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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진
攝理와 位相
박광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국화단의 아카데믹한 화풍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유형은 서구문물과 접촉하기 시작한 동양권의 유화의 특색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사실적인 특색과 기술적인 기법의 장기(長技)가 그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시각이었고 처음엔 놀라움이었다. 이러한 특색을 살린 박광진의 모티브가 되는 주제는, 전체의 분위기 속에서 빛으로 둘러싸인 시각적인 환경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인상파의 감화를 반영하는 작가로 생각되고 있다. 시간과 계절, 그리고 풍토와 빛의 분위기를 가지고 한국의 산야를 표현하려는게 그의 본령이었다. 명확한 포룸들로 구성되는 인물화와 정물화는 그의 본령은 아니었다.
이러한 박광진이 근자에 새로운 화면을 실험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조형예술은 공간의 예술이며 공간 밖에선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의 지각이 공간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조형적인 형식을 띄우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조형적인 기호는 예외없이 모두 공간적인게 된다. 공간이란 시간과 운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場-torrain)을 가리키며, 여기에 여러 시호들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조형적인 성격을 비로소 갖게 된다. 따라서 조형의 형식을 공간의 변이(變移)라는 면에서 이해하는 게 긴요함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미술작품은 미술가와 그 시대가 공간으로부터 오도하는 이해의 방식을 우리들에게 교시(敎示)한다고 하겠다.		  

자연의 생존
110x120cm


Herbe sauvage et le vent
110x120cm


Survie de la nature
90.9x72.7cm


Royal Azalea of Cheju
90.9x60.6cm/1998


Herbe sauvage et le vent
110x120cm		  
미술을 이러한 공간으로 의식한 최초의 작가는 주지하는 대로 세잔느였다. 자연을 보는 눈을 우리에게 빌려준 게 관례적인 풍경화라면, 세잔느의 화면은 공간의 지각을 우리에게 빌려준 것으로 비유된다. 여기에서 공간은 그 위상(位相-topology)을 뜻한다. 이번 발표회의 서문을 쓴 프랑스의 평론가 ‘슈리게라’는 데카르트의 “감성은 하나의 법칙이다”를 인용, 박광진의 공간을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서 ‘감성’은 고안을 의식하는 인간의 상상적인 패러다임을 말한다. 브라크 식으로 말하면 “나는 감동을 수정하는 법칙을 사랑한다. 동시에 법칙을 수정하는 감동도 사랑한다”는 공간인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자연은 만생적인 공간이라면, 회화는 조형적인 공간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박광진의 공간은 자연과 조형의 종합(綜合-synthetize)으로 발전된 기본적인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표(地表)와 수직(守直)으로 짜여지는 공간위상이다. 수직은 지표의 형상이며, 지표는 수직의 소지(素地)이다. 이러한 어우러짐이 게스틸트의 정태(靜態)가 아닌, 자연의 진폭(振幅)을 연상시켜 줌은, 발생적인 공간과 조형적인 공간의 어우러짐 때문이라 하겠다. 강가 혹은 해변의 능선에 자생하는 갈대들의 싱그러움은 밑에서 위로 자라, 수직은 발아(發芽)의 현상이며 수액(樹液-seve)의 변용으로 자라나는 자연의 섭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자연의 자족적(自足的)인 공간구성이며, 그래서 자연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박광진의 자연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광진의 이미지 컬러는 갈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갈색은 농경민족의 생명관, 곧 그 무상함을 유발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공간은 소리 없는 애수를 자아내고 있다. 왜 그런가 …

유준상 / 미술평론가, 서울시립미술관장
유네스코회관 전시평문에서 전재